참거래 농민장터를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2004년에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았고, 2005년 겨울에 백수가 되었다. 그해 겨울과 봄에는 구례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내가 여기에 내려온 이유는 여러 가지 인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우연 때문이었다.
2004년 봄, 나는 일본에 살고 있었고 그해 봄에 한국에 돌아와 동아 마라톤에서 서브3(3시간 이내 완주)를 기록하기도 했다. 남들에겐 특별한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나에게는 충분히 기억될 만한 사건이었다. 그해 3월부터 줄곧 기분이 좋았다. 일본에 다시 돌아가 시작한 중계기 서비스도 나름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고민이 깊어졌고, 긴 휴가를 내어 지리산에 왔다가 덜컥 여기에 정착해 버렸다. 결국 2006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나는 해고를 당해 백수가 되었다. 그해 겨울엔 조금 우울했지만, 봄이 오고 섬진강변에 매화가 피자 마음은 다시 평온해졌다. 난 아직 젊었고,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해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참거래 농민장터'를 만들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20년이 지났다. 20년을 넘긴 동네 가게는 수없이 많지만, 20년을 넘긴 온라인 쇼핑몰은 흔치 않다. 잘되면 매각하고 잘 안되면 폐업했다. 그동안 내 주변을 스쳐 간 많은 사이트가 그렇게 사라졌다.
10여년 전에 농진청에 모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온라인 사이트를 대표로 나도 참가했는데 당시 참가했던 사이트에 오랜만에 찾아보니 사라졌거나 실질적인 판매를 하는 곳은 참거래뿐이었다. 물론 사이트만 존재하고 실질적인 매출은 없는 '온라인 상의 사이버 유령' 같은 곳들도 많겠지만 말이다.
[2008년 한겨레신문]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정거래'를 원한다면 이용해볼 만한 곳이다. 유통비용을 절감해 가격을 낮추고, 판로가 없는 유기농 농가를 돕는 '착하고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한다. 화려한 포장은 아니지만 '김철수 농부의 토마토', '이영희 농민의 사과'처럼 정감 어린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는 곳이다. 당시 나는 인터뷰를 통해"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맞대면을 할 수 있는 만큼 도농 간의 직접 소통이 가능하다"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올해로 20주년이 되었다. 그렇다고 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20주년이 되니 마음이 동해 글을 한 번 써봤다. 기회가 된다면 20년 동안 참거래를 운영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전, '평사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바빠서 거절했었다.
그때는 참거래 농민장터가 워낙 잘나가서 콧대가 높았다. 하루가 멀다고 언론 인터뷰, 출연 제의, 강의 요청이 끝없이 밀려왔다. 역시 '메뚜기도 한철'이었던 시절이었다. 참거래는 여전히 살아있고 묵묵히 운영 중이다.
다만 이제는 내 나이만큼 함께해 온 소비자들도 나이를 먹었고, 함께한 생산자들도 나이를 먹었다. 은퇴한 농민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농민들과 소비자분들도 많다. 그리운 얼굴들이 참 많다. 잊히는 것은 때로는 좋고, 때로는 슬픈 일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 사진은 생산자 사진이다.
저 안에 이미 떠난 사람 그만 둔 사람 농사를 포기한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