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많이 보면서도 사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감독이라면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검토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드라마 《모자무싸》(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
출연하는 감독들을 보면서, 감독 이전에 그들이 모두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모자무싸》까지. 《나의 아저씨》는 세 번 정도 봤고,
《나의 해방일지》도 두 번 정도 봤다. 아마도 《모자무싸》도 한 번은 더 볼 것 같다.
영화를 많이 보면서도 감독에 대해서는 항상 무관심했다. 앞선 두 드라마를 보면서도 작가 이름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아, 비슷하네' 뭐 이런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 박해영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작가를 알고 나서 그가 쓴 드라마들을 다시 생각해 보니, 다 비슷한 사랑,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씩 다르면서도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드라마 모두 젊은 여자와 나이 든 남자가 주인공이다.
대부분 여자는 태생적인 슬픔을 가지고 있고,
남자는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상대적으로 태생적인 고민까지 안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젊은 여자가 대부분 먼저 다가간다. 나이 든 남자는 대부분 조금은 방어적이다.
아마 나이 든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다가갔다면 뻔한 막장 스토리가 되었을 텐데, 다행히 모두 그 반대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이걸 연애라고 하기는 어렵고 응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추앙하라고 했지만, 관계가 더 노골적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딱 그 정도다.
《모자무싸》의 황동만은 찌질하지만 아직은 세상에 타협하지 못하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고,
변은하는 능력이 있지만 태생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그래서 그녀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 둘이 만나서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드라마. 사는 것이 힘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사랑이 시작되었다가 식어가는 이별 또한 별이 지고 다시 뜨는 것처럼 늘 오고 가는 것이다.
사랑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원하는 한 가지는 상대가 나를 늘 변함없이 응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잠시 응원하고, 남은 시간 동안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느라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참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어른들이나 친구들이나 다들 왜 이렇게 칭찬을 못 할까'였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말로 하는 응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는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시기심과 질투, 즉 '르상티망'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남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순간 자신이 그보다 아래로 내려앉는 듯한 묘한 나약함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타인을 응원하려면 내면이 먼저 단단하고 풍요로워야 하는데,
스스로가 결핍되어 있으니 칭찬이라는 가장 값싼 호의조차 베풀지 못하는 것이다.
한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유행이었다. 나는 그 책이 그렇게 유행하는 것을 보며,
이제는 비난과 비판, 잔소리가 줄어들고 격려와 응원, 칭찬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고래가 춤을 추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끝내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인간은 사는 것이 두렵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늘 태생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 때문에 삶은 더 힘겨워진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또 인간에게 위로받는다.
박해영 작가의 남편은 10여 년 전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녀 또한 드라마를 통해 위로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나오는 드라마는 일상에서 흔치 않기에,
많은 사람은 화면 속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 자신도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와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