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라는 단어는 일단 상대가 있다. 그리고 이건 이미 내가 그 상대에게 받은 치명적이고 잊을 수 없는 피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 오면 우린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복수하자', 아니다 '용서하자'.
나는 관대하고 포용력이 있고 착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 상대를 용서하기로 했다.
혹은, 나는 그 치욕을 잊을 수 없고 반드시 복수를 해야겠다.
니체는 복수하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도덕적 인간으로 포장하는 인간을 '노예 도덕'을 가진 나약한 인간이라고 했다.
노예 도덕을 가진 인간은 말로는 용서했다고 하지만 마음속 깊이 원한(르상티망)을 쌓아둔다.
그들은 결코 상대방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한다.
반면 '주인 도덕'을 가진 강자는 분노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원한을 풀어낸다.
그래서 니체는 진짜 용서란 오직 강자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에게는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법과 자본 시스템이 우리를 노예 도덕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폭력을 가한 대상에게 내가 똑같이 폭력으로 갚으면, 대신 내가 감옥에 가야 한다. 그 상대가 어떤 벌을 받았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상대가 나를 10대 때렸는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해서, 내가 분을 참지 못하고 똑같이 10대를 갚아주면 보복 폭행이 되어
내가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러니 현대 사회에서 보복이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하지 못하는 복수를 시원하게 대신해 주는 대중매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김부장》이나 《참교육》같은 작품들이 다 그렇다.
시원하게 때리고 시원하게 복수한다. 나는 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한다.
일본 드라마 《가스인간》 역시 복수극이다. 복수극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결을 같이 한다. 《김부장》은 딸을 괴롭힌 인간들을,
《참교육》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참을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하고, 《가스인간》은 인간을 도구로 삼아 희생시킨 관료들에게 복수한다.
나도 가끔 사적 복수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주로 운전을 하고 있을 때다.
오늘 아침 토지초등학교 앞을 지나오는데, 골목에서 갑자기 나온 트럭이 내가 운전하는 차로 달려들었다.
다행히 내가 방어운전을 하며 그 차를 살피고 있었, 급하게 클락션을 누르고 핸들을 옆으로 좀 더 꺾었다.
다행히 사고를 면했다. 아마 사고가 났다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들이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 트럭 운전자를 향해 욕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욕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에... 물론 이번 상황은 별일 없이 넘어갔지만,
만약 사고로 이어져 아들이 다치거나 더 큰 일이 일어났는데도 정작 운전자는 보험 처리만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간다면 어떨까?
심지어 그가 내 이웃이고 가끔 마주치는 사이다.
그는 멀쩡하게 살아가는데 내 아들은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면, 볼 때마다 그 인간을 어떻게 해버리고 싶겠지만
나는 법 앞에서 참아야만 한다.
그럴 때 나는 복수하고 싶어질까, 아니면 용서하고 싶어질까? 영화 속 주인공이라면 찾아가서
시원하게 몇 대 때려주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그는 피해자가 되고 나는 가해자가 된다.
복수는 참 어렵다.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의 주인공(피해자의 남편)은 아내를 잃었다.
가해자는 아내를 잔인하게 성폭행하고 무참하게 살해힌다.
어렵게 찾은 범인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 정부가 그를 끄나풀로 쓰겠다는 이유로 풀어준다.
결국 남편은 아내를 죽인 범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절하게 복수한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작품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묵직한 방법으로 복수를 마무리 짓는다.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자,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선' 91위에
오른 영화이니 믿고 봐도 좋다. 영화 자체는 로맨스 스릴러 장르인데, 그 서스펜스와 로맨스의 균형도 매우 흥미롭다.
최근 정치권을 보면 복수를 입에 담으면서도 정작 행동하지 않거나,
복수를 약속해 놓고 미적거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를 보면 역시 현실에서의 복수란 참 어려운 영역인 것 같다.
문득 나에게 사적으로 복수할 만큼의 상대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는데, 딱히 떠오르는 이가 없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