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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거래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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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어제 32km 장거리 훈련을 한 탓인지
8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햇살이 눈부셨다.
여느 아침처럼 새소리와 함께


카톡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조 대표님...고영문 대표님이 실족사하셨어요."
문자는 짧았지만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를 2001년 런다이어리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21년이 지났다.

그의 마라톤 최고 기록은 3:16초다.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이 가장 하고 싶은 꿈의 기록은
2시가 59분 즉 서브 3리다. 딱 16초가 부족했다.
16초 때문에 서브3리를 하지 못했다고 매번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생각이 난다.
그와 나는 마라톤 대회에서 여러 번 함께 달렸다.

2003년 봄에 동아 마라톤과 가을 중앙 마라톤에서
2004년 봄 동아 마라톤과 가을 중앙 마라톤에서도 함께 달렸다.
사실 그는 과천에 살았고 나는 대전에 살아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고향은 고창이었고 나는 김제였다.
둘 다 전라북도 출신이었다. 묘한 동질감이 있어 서로를 응원했다.
그리고 2004년 나는 지리산에 내려왔다.
그 후 가끔 전화를 해서 곧 귀농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가끔은 귀촌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고창에 내려갈까 지리산에 내려갈까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리산에 내려왔다.
구례 마라톤 클럽 회원이 되었고 우린 자주 함께 달렸다.
하는 일이 비슷해서 달리면서 농산물 판매나 컨텐츠에 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나누곤 했다.

.
< 고영문님과 함께 >

몇 해전 지리산 산악마라톤 코스를 만들기 위해 함께
피아골에서 화개와 이어진 황장산 산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눈이 내린 날이었다.
산 능선에는 찬바람에 심하게 불었다. 코스를 정하지 못해 이길 저길 다니 보니 시간이 자꾸 늘어졌다.
날이 춥고 꽤 긴 거리를 걸어 코스를 정했다. 그 길 끝에 고영문씨의 집이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따뜻한 라면 한 그릇은 봄날처럼 따사롭게 느껴졌다.
그는 쇼셜 마케팅의 선구자로 마라톤에서 하지 못한
서브3리보다 더 위대한 일들이 해나갔다.
그러던 그가 너무나 황망하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무라카미 하루끼는 자신의 묘비명에
[무라카미 하루끼 작가(런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라고 남겨 두고 싶다고 했다고 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하고자 했던 걸음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농부 소셜마케터로써의 고영문은 아니다.
그는 나에게 함께 달리런 런너였고
꽤 잘 달렸으며 달리기에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기억하려고 한다.
농민들을 사랑하고 항상 함께 했던
멋진 런너 고영문님 오래동안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글은 2022년 7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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