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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1편입국



도쿄발 한국행 비행기 한 대가 김포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4월인데도 찬 바람이 불었다.




꽃샘추위가 왔다며 다시 겨울이 온 것 같다는 방송을 한 그날 아침이었다.  


남녘에는 벚꽃이 피었다고 했던 것이 어제였는데 오늘 아침에 눈이 올 것 같다는 예보를 했다.

강준과 하나는 이날 한국에 도착했다.

도쿄와 서울이 이렇게 다른가? 강준은 서울 추위가 낯설게 느껴졌다. 

도쿄 공항을 떠날 때만 해도 강준은 반소매를 입고 있었다. 


강준과 하나가 한국에 올 결심을 한 것은 곧 있을 결혼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국이라는 곳에 한 번에 가야겠다고 강준이 이야기했을 때 

하나도 “조국”이라는 낯선 단어를 머릿속에 그려 봤지만 뚜렷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조국이라는 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도쿄에서 만났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둘은

한국 유학생을 돕는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 단체에서 둘은 만났다.

같은 재일교포에 오사카 출신이라서 그런지 쉽게 친해졌다.

그리고 한국에 가보기를 결정한 것은 그해 이른 봄이었다.


강준은 할아버지의 고향에는 가볼 생각이었다.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남원 가는 버스표 주세요.”

강준은 능숙한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하나는 자신의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강준의 부모님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강준의 부모는 집에서 한국어만 사용했다. 


그래서 강준의 한국어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아빠는 한국인이었지만 엄마는 일본인이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남원 가는 버스를 탄 강준과 하나가 남원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일단 여기서 하루 자자"

 강준과 하나는 남원 터미널 근처 여관에서 하루를 묵었다.


‘남원은 추어탕이 유명하다는데?

“하나, 너 추어탕이 뭔지 알아?

“몰라요"

“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어요? 강준 씨는요?

사실 강준도 먹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할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과 하나는 여관 주인이 추천하는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강준은 시장했는지 맛있게 먹었다. 하나는 먹지 않았다. 하나는 따로 나온 밥을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남원 요천 강변을 걸었다.


강변엔 벚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벚꽃이 강 양쪽으로 등이라도 켠 그것처럼 환하게 피어 있었다.

분홍색 벚꽃이 강을 따라 흘러서 강물이 분홍색처럼 보였다. 

도쿄는 보름 전에 벚꽃이 졌다.

“한국에도 사쿠라가 많네요" 하나가 놀란 것처럼 말했다.

“하나야…. 왕벚나무는 한국이 원산이야. 우리 꽃이라고….”

강준은 우리 꽃이라고 말했지만 스스로 이야기하고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얼굴 위로 벚꽃 잎이 떨어졌다.


꽃처럼 예뻐 보인다고 강준은 생각했다.

남원은 남쪽이라 서울보다는 좀 따뜻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광한루가 보였다.


춘향전 알지? 하나

하나도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던 춘향전이 생각났다.

여기가 그곳이군요. 

맞아… 

여기가 춘향이와 이 도령이 놀던 광한루야…

강준과 하나는 책으로만 봤던 광한루를 쳐다봤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광한루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가자… 늦었어.”




2편 인월


여관에 도착했을 때 둘은 이미 지쳐 있었기에 쉽게 잠들었다.

강준에 일어난 시간은 새벽이었다.

하나를 깨우지 않게 조심스럽게 여관을 나왔다.


요천강을 따라 강준은 걸었다.

이 강물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강준은 지나가는 남자에게 물었을 때 그 남자는 짧게 이야기 했다.

“지리산에서 흘러 나와요. “ 남자는 손으로 먼 산을 가리켰다.

큰 산이 남원의 동쪽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가다가 다시 서쪽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저 산이구나….”

아버지는 가끔 지리산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할아버지 고향에 있는 산이 지리산이라고 

그 산은 아버지 어머니같은 산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이 물도 지리산에서 흘러오는구나”

강준은 강으로 내려갔다.

흘러가는 물을 손으로 쥐었다.

4월의 강물은 아직 차가웠다.

강준은 여관으로 돌아갔다. 

하나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불안 했어요"

“어…앞에 강가에 가봤어"

“산책하러"

“그랬군요"

남원 시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인월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 버스 터미널에는 등산객들과 학생들 그리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국말 속에서 강준은 자신이 한국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래 여기가 조국이구나! 하나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땅에 있음을 확인했다.

조국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모르는 말을 사용하는 땅 

여기가 조국이 맞는 것일까? 하나는 익숙하지 않은 말들 속에서 자신이 이방인 처럼 느껴졌다.

둘은 강준의  할어버지 고향 인월로 향했다.

강준과 하나를 태운 버스는 남원의 평야를  지나 가파른 산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원재]라는 팻말이 보였다.

높은 산길 사이로 난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버스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버스는 좌우로 흔들렸다. 하나는 강준의 손을 꼭 잡았다. 


“무서워?”

“조금요"

그렇게 30분쯤 갔을까 고개 하나를 넘고 나니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이 산 꼭대기에 이렇게 넓은 평야가 있다는 것이 강준은 신기했다.

버스는 인월터미널에 둘을 내려주었다.


“아저씨 산내요?”

“네 타세요" 택시 기사는 간단하게 답했다.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저 산이 한국에서 가장 큰 산인 지리산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어머니같은 산이라고도 하지요"


택시 기사는 묻지도 않았는데 지리산에 대해 이것 저것 신나게 떠들었다.

인월에서 택시로 20분  달리니  강준의 할아버지의 고향이 나왔다.

강준은 동넷 분들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물었지만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 동네를 떠난지  50년이 지났으니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도 모두 돌아가셨겠지"라고 강준은 생각했다. 

“하나는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아?”


“별로요”

고향이 제주도라고 하던데요?

“제주는 멀어서 나중에 여행이라도 한 번 가면 될 것 같아요.

강준과 하나는 남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호텔에 밤에 도착 했다.

서울의 밤은 싸늘했다. 도쿄의 닮았지만 전혀 다른 날씨였고

남원과도 달랐다.





3편 가담


아침 방송을 보던 강준은 채널을 돌리다가 멈추었다.
집회 현장이 방송에 보였다.
시위대와 경찰이 몸싸움하고 있었다.
강준은 호기심이 생겼다.
“하나! 우리 저기 가보자?”
“무서운데요.”
“싸우는 곳에 가는 것은 위험해요.”
“우리 그냥 서울 경복궁이나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멀리서 구경만 하자.”
“일본에서는 저런 현장을 볼 기회가 없잖아.”
“무슨 일이 생기겠어?”
“별일 없을 거야…”
강준의 거듭된 설득에 하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그만 보고 돌아와요? 네?
강준과 하나는 아침밥을 대충 먹고 지하철을 타고 대학교 앞에서 내렸다.
학교에 가보니 어제와는 다르게 아무런 집회도 없었다.
캠퍼스 안에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조용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집회가 끝났나 봐,
강준과 하나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 일도 없자 살짝 실망스러웠다.
캠퍼스 구경이나 하고 돌아가자
우리 이제 호텔로 돌아가요?
강준과 하나가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지날 때 집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기 집회하고 있는데
우리 잠깐 여기서 내려서 보고 가자”
강준 씨 위험해 보여요
우리 그냥 호텔로 가요!
아니야!
“멀리서, 잠시 보고 가자
이제 곧 일본에 돌아가잖아
우리 이런 시위는 영원히 방송에서만 볼지 몰라”
강준이 버스에서 내리자 하나는 마지못해 따라 내렸다.
강준과 하나가 내렸을 때 몇백 명이었던 시위대는 시간이 지나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시위대의 함성이 광화문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강준과 하나가 서 있던 곳은 처음 시위 시작했을 때는 몇백 미터 거리였지만
구경하는 사이 강준과 하나는 시위 중앙에 서 있게 되었다.
강준도 시위대가 외치는 대로 따라 외쳤다,

호헌철폐, 6월항쟁 : 네이버 블로그
독재 타도 호언 철폐
하나는 불안하게 강준을 쳐다봤다.
“강준 씨 이제 돌아가요.
우리 시위대에 너무 깊숙이 있는 것 같아요.”
“빨리 가요
하지만 강준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강준은 그동안 일본에서 받아왔던 차별 때문일까?
시위대와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하나야 시위대와 함께 구호도 외쳐봐!!
진짜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
호언 철폐 독재 타도,
사살 강준은 호언 철폐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사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가 무슨 말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차별금지, 차별철폐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많은 사람과 구호를 외치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함께 모여 구호를 외치고 하나가 되어 가는 것
이 순간이 좋았다.
강준 씨 이제 우리 빨리 돌아가요.
경찰들이 앞쪽에서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다.
빨리 뛰어요.
강준 씨 빨리 도망쳐요.
전경과 경찰이 시위대를 포위하고 무력 진압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순식간에 집회 장소는 전쟁터처럼 보였다.
시위하는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도로는 마비 상태가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강준은 하나의 손을 잡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경찰과 전경이 시위대를 압박했다,
강준과 하나는 가게 사이의 골목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몇 분을 달렸을까, 시위대도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
강준 씨 다행이에요.
여긴 안전한 것 같아요.
그래요.
여긴 경찰이 안 보여요.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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